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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08월 쉼터일기

페이지 정보

조회 : 814회 작성일 : 21-05-25 09:54

본문

2만원 십일조 했어요.    2009/06/01

2구역에 계신 유용X할아버지께서 지난달 월급을 타셔서 십일조2만원을 했다고 자랑하셨다. 2만원이면 월급이 20만원이라는 얘긴데 무슨일을 하셨을까? 유용X할아버지는 올해 82세이시다. 귀도 잘 안들리고 몸도 불편하여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이라곤 엄두도 내지 못했었지만 노인일자리들이 제공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일주일에 3일, 오전만 하는 일인데다가 복지관이나 학교등에서 정리 정돈하는 등의 간단한 일들이어서 힘든 것도 아니다. 유용X할아버지는 월급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아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픈일임을 깨닫게 된다. 누구하나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온다는 것만큼 삶이 무료해 지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일에는 단순히 '노동과 돈'이라는 측면말고도 '사회적역할'이라는 측면이 존재한다.

쉼터에 계신 할아버지들이 하나,둘 일터에 나가면서 쉼터에는 새로운 활기가 감돌고 있다. 일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바뀌기 시작한 것은 건강이다. 유용X할아버지는 일을 나가지 않는 날도 방에서 간단히 운동을 할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해 계신다. 쉼터에 계신 노인분들을 보면서 노인일자리의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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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서(約束書)    2009/06/02

약속서(約束書)

황XX는 술을 7일 안에 금주하겠습니다.
상기자는 7일 후 술을 먹은 것이 확인되면 퇴소하겠습니다.

2009년 6월 2일 9시 40분

서명인 황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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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각서를 얼마나 썼을까? 한문까지 섞어서 글을 쓰는 모습이 초보수준은 아니다. 몸이 안좋아서 입소하러 왔지만 한두번도 아니고...일주일안에 금주하겠다는 각서내용을, 오늘부터 금주하는 것으로 바꿔서 입소를 시켰다. 각서가 술을 끊는데는 도움이 안되지만 적어도 퇴소시킬때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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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목사님 CTS 아침경건예배 설교  200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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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살하렵니다~  2009/06/04

며칠 전 술을 먹고 방사람과 싸우다 퇴소된 김오X씨가 어제 만신창이가 되서 왔다. 그리곤 사무실에 와서 술주정을 했다.

"나 자살하렵니다~ 노무현대통령처럼 자살할 겁니다. 그리고 나 가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그리고 나 대통령이 될 겁니다. 말한대로 됩니다."

그리곤 똑같은 말을 또하고 또한다. 테이프를 반복해서 틀어놓은 것처럼 가겠다는 사람이 가지는 않고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했다. 지난주에도 몇 십분동안 계속 같은 소리를 해서 힘들게 했다는데 술을 어떻게 배웠는지 몰라도 술주정이 영 좋지 않았다. 이래가지곤 어떤 곳에서도 생활하기 힘들다. 어제 만신창이 모습으로 방을 구하러 다니다보니 받아주는 곳이 없었나보다. 오늘 아침에는 옷 갈아입고 가겠다고 잠시 들렸다갔는데 고시원이라도 얻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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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이진*)    2009/06/04

간증문( 이진*)

10년 지교 친구이며 같은 부동산 업자가 경기도에 밭과 임야 3천평 사놓은 것이 1억이 부족하여 잔금처리를 못한다고 현금 1억만 융통해 달라고 하소하기에 내가 거주하고 있는 단독주택을 은행에 잡히고 1억을 빌려주었습니다. 3개월 만에 상환한다던 친구가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까지 체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다 못해 한 달만 기다려주면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다기에 믿고 여러 은행에서 현금서비스를 사용하여 은행이자를 매꾸어 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마저도 할 수 없어서 결국 손님이 중도금조로 보관하여 놓은 이천만원까지 카드결제금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탈이 되어 경찰에 고소되어 횡령혐의로 육 개월 형을 받고 서울교도소에서 4개월 복역한 뒤 8.15 대통령 특사로 출소하고 보니 거주하던 단독주택은 경매 처분되어 있었습니다. 갈 곳이 없어 고시원으로 옮겨 살아가면서 전에 하던 일을 하려했지만 전과기록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도 추워지고 돈을 융통하는 것도 불가능하여 마음도 추스르고 쉴 겸 농촌에 가서 일년 만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는 강원도 춘천 친구에게 형편을 얘기하고 밭 1,000 평을 임대하여 콩을 심었습니다.

춘천 농장에 가려고 청량리역에 와보니 방금 통일호 기차는 떠났고 한 시간 정도 남았기에 역전 포장마차에 가서 잔치 구수를 주문하여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먹고 있던 육십 대 중반이나 되는 영감 두 사람이 자기들 끼리 하는 말이 “이 근처에는 입소만 하면 무 료로 재워주고 하루 삼시 먹여주는 곳이 있다던데” 하면서 국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영감들 말이 솔깃하여 그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골목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2층 사무실로 안내하여 사무실에 들어가 현 실정과 사정을 하소연하니 오늘부터 입소해서 생활할 수 있다면서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리곤 지하 숙소로 안내해 주었는데 10여명이 생활하는 곳이었습니다. 어째든 하루만 있어보자 하고 하룻밤을 지냈는데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이 곳에 대해 알고 보니 가나안교회에서 운영하는 가나안쉼터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기에 구역에 있는 성도들과 같이 평생 처음 예배를 드리며 일주일을 생활했습니다. 주일 예배 때에 담임목사님이신 김도진목사님께서 고생하셨던 간증 설교를 듣고 나니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로 고백하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나도 이제 새로운 인생으로 다시 거듭나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내가 너무 허황되게 살아 온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이 교회에서 그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며 반성하며 살아 가리라 마음을 다지고 전에 살았던 고시원에 가서 짐을 싸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도 쉼터로 옮기고 아주 정착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입소한지 열흘이 지나서 송파구청관내의 도로제초작업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번 돈으로 전화요금 및 일용잡비가 해결되었습니다. 신앙생활 두 달 정도 되니까, 담배도 끊고 술도 끊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런 저를 좋게 보셨던지 서계동에 있는 자활의 집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빌라였는데 새로 도배, 장판과 수리를 깨끗이 해놓았기 때문에 새 집 같았습니다. 너무 깨끗하고 공기도 맑아서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입소하기 전 카드미납 체납금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빌려 쓴 채무 때문에 매일 독촉장이 와서 항상 마음이 편하지를 못하고 지내는데 사무실에서 파산신고를 접수하기에 기꺼이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리곤 하나님께 면책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6,7개 카드회사 채무와 기타 차용금 합하여 신청한 결과 2008년 10월에 파산판결이 나고 2008년 11월에는 면책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금은 광진구청으로 서울시에서 제공한 일자리를 나가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가나안 쉼터의 고마움을 간직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받은 은혜를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베풀고자 합니다.

2009년 6월 4일  샬롬의 집 이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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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김XX-가명)  2009/06/15

승리를 향한 걸음 -김XX-가명

25년여 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일들을 만났습니다. 좋았던 일도 많았습니 다. 편안하고 즐기고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어디 가나 대접받고 살았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고난과 환 란의 날도 많았습니다. 고난이 스치고 간 자리는 언제나 쓰리 고 아픈 상처만 남겨 놓 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이별, 친척과 친구들과 단절의 아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들 이런 아픔들은 나의 생의 동반자였었습니다. 내 할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자책감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울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라도 나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내게 위로가 되고 감사 할 뿐입 니다.

지난날 사업이 잘 될 때에 거처 할 곳이 없는 은퇴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수양 관을 지을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호수 위의 언덕에 좋은 자리까지 물색해 놨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의 욕심 때문에 그 일은 뒤로 미뤄놓고 상업용 빌딩을 먼저 짓기로 했습니 다. '하나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한 바퀴만 더 돌리고(사업을 한 차례 더한다는 말)나서 더 멋지게 지을 테니 두고 보세요. 미안해요 하나님!'

사업은 잘 진행 되었습니다. 상업용지 1,700을 매입하고 쇼핑몰 연건평 11,000여평. 건축허가를 내고 현대건설과 도급계약을 마치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공사를 시작 하 자 마자 문제가 하나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설계변경에 1년이 소요되고 공사 착공하고 3개월 만에 토목공사 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공사가 중단되고 현대건설에 서 사고현장으로 지정되고 우리 회사 직원이 현대건설에 줄 돈 5억원을 가지고 줄행랑 을 치고 ..좋지 않은 일들은 연속해서 터졌습니다. 공사가 중단된 건물이 분양이 잘 될 리가 있나요. 2년 여 동안 가진 고생 다 하다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지요. 불순종하고 교만한 삶의 결국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 빚쟁이를 피할 겸 매일 밤 낮 교회에서 기도 원에서 살며 기도를 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또 빌었습니다. 내가 한 짓은 내가 잘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 더욱 강하게 가슴에 느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있는 부동산 다 정리하여 금융권과 현대건설과 세금만 남겨 놓고 개인 부채를 정리 했는데도 수 십 억 원을 변제하지 못했습니다. 빚쟁이가 없는 땅에  재기 의 꿈을 가지고 빼 돌린 돈 조금 챙겨 싸들고 상경을 하여 구로동 공구상가 옆 기아자 동차 학원자리 2,400평을 계약하고 서울에서 첫 사업을 시작했지만 돈을 투자 하기만 하면 일이 되질 않고 투자한 돈은 건질 수가 없는 묘한 상황이 만들어 집니다. 차라리 길바닥에 뿌렸으면 해외토픽에나 나지, 이건 무슨 짓인지 나도 모르겠데요. 돈은 바닥 이 났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하나님은 도와주신다는 데... 그런데 나는 아닌가 봐요. 앞은 캄캄 하기만 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관에서 여인숙으로 또 여인숙에서 찜질방 으로 다음엔 끼니도 잇기가 어려워 하루 한끼로 식사문제를 해결 할 때가 많아 졌습니 다. 개봉동 시장 안에 가면 커다란 왕 찐빵을 1,000원에 3개씩 파는 빵집이 있었습니 다. 맛도 좋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거의 매일 저녁때 들르곤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웬 빵을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이렇게 생활하면서도  예 배는 꼭 찾아 드렸습니다. 지나가다 아무 교회나 눈에 띄면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교회들은 점심도 안 먹는 교회인가 봐요. 하나님께서 쫄쫄 굶고 정신 차리라고 밥 안 먹는 교회로만 인도 하셨나 봐요. 제일 힘든 것은 먹고 자는 문제였습니다. 막노동 이고 쉼터고 이런 것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를 못하여 더 막막 하였겠지요.

한가지 생각해둔 것이 있는데 여차하면 오산리 기도원에 들어가 몸을 의탁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일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어디든 예배 실 컷 드리고 찬양 실컷 부르고 기도나 맘껏 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 했습니 다. 달라는 돈은 안주시드니 이런 기도는 어찌도 그리 잘도 들어주시는지요.

하나님께선 얼마 안되어 가나안교회로 나를 인도 하셨습니다. 신당동 중앙시장 다방에 서 약속이 있어 기다리고 앉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내 곁에 앉았는데 588에는 밥을 주 고 잠을 재워 주는 교회가 있다고 하는군요. 귀가 번쩍 띄는 빅 뉴스였지만 자존심 때 문에 그들에게 바로 물어볼 용기가 없어 얼마동안 시간이 지난 뒤 다른 사람에게 588 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대한민국에서 588모르면 간첩이라면서 청량리 사창 가라고 알려 줘 가나안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밥도 실컷 먹고 잠도 잘 잤습니다.

쉼터와 교회 생활에 불만 있는 분 있으십니까? 불평 있으신 분은 입소한날 하루만 생 각해 보세요. 그 날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찬양을 많 이 부르고 예배 많이 드리는 교회는 난생 처음 보았습니다. 찬양을 불렀다 하면 기본 이 한 시간. 언제나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실감케 합니다. 가나안에 온 날부터 하나님께서 이리로 인도하신 뜻이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여야 할지를 하나님께 기도 하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겁이 났구요 이루어 지 지 않을 것임을 이젠 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며 함께 생활하고 대화하면서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알 아 가고 이해하고 배워 갔습니다. 안타깝고 딱한 사 정이 있는 사람, 몸이 병들어 고통 받는 사람, 술과 도박으로 패가한 사람, 가족과 자녀들 문제로 괴로워 하는 사람, 사업 이 망하여 좌절 한 이등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더러는 술 쳐 먹고 주정하는 놈 잘 먹고 잘 놀고 할 짓 다하면서 봉사는 죽어라 안 하는 놈, 어깨 자랑하는 놈, 별 개수 자랑하는 놈, 게으르고 얄밉고 일 안 하는 놈들....이들과도 싸우고 대화하고 달래고 기도하면서 여기 가나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 갑니다.
다 큰 사람 똥 빨래 오줌빨래 이불 빨래도 여러 번 해 봤습니다. 똥싼 어른 목욕도 시 켜 봤죠. 이 곳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거 해 볼 수 있겠습니까? 김도진목사님의 삶에 서 예수님의 사랑을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내 인생과 신앙도 많이 변화 하였습니다. 내 삶이 내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바뀌었고 나의 생각의 주관자가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 안에서 예수님 한 분으로 기뻐하며 풍요로우며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선교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지에 많은 선교사들이 가시는 데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1년에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00만명이 죽어 간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먹여 놓고 살려 놓아야 예수를 전하든지 복음이 들어가든지 할 것이 아닌가 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사는 땅 그 곳에 물을 파고 농사를 짖고 채소를 기르고 과일 을 심고 가축을 길러 자급 자족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일명 예수마 을... 교회를 짖고 학교를 짖고 병원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마을을 조성하는 것, 그들이 건강하게 웃으며 일하고 먹고사는 행복한 마을이 이루어 지기를 꿈꾸며 오늘도 기도합 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이 언제나 나에게 큰 힘이 되고 도전이 됩니다.

작년 어느 날 주일 대예배를 드리고 내려오는데  1층 문앞에 우리 큰아들이 서 있었 습니다. 너무 놀래서 반가운 것인지 뭐가 뭔 지 정신이 하나 없었습니다. 결혼하여 두 아이가 일본에 유학 중인데 국내에 들어 오기만하면 나를 찾아 기독교와 관련된 시설 을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헤어지면서 하는 말이 아빠 여기서 또 다른 데로 가서 연락 이 안되면 영원히 아빠를 찾지 않는다고  여기에 있으면 제가 모시러 온다고 하였습니 다. 내가 너를 데리러 갈 테니 너나 예수 잘 믿고 열심히 살라며 보냈지요. 그 후 며느 리도 찾아온다고 전화가 왔는데 내가 찾기 전에는 전화도 하지말고 찾아오지도 말고 아무한테도 얘기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착해서 그런지 말도 잘 듣네요. 사실은 무지 보고 싶은데...

나로 말미암아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집을 나왔습니다. '나는 꼭 재기한다. 내 가 돌아오는 날까지 용기 잃지 말고 잘 살아 달라고.' 쪽지 한장 남겨 놓고 떠나 온 지 가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주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날을 속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나의 믿음만큼 나에게가 아니라 내 가족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나로 인하여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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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김XX)    2009/06/17

■ 절망의 어린시절

많은 세월을 살지 않은 저의 인생은 불행한 삶의 연속으로 매일을 고통과 절망으로 낙담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14살의 나이에 중학교 입학을 하게 되면서부터 저에게는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찾지 못하는 희귀성 질병이었습니다. 하반신의 마비 증세가  하루를 다르게 악화 되어 지게 되어지면서 결국은 다니던 중학교 마져도 졸업 한 학기를 눈앞에 둔 채 자퇴를 해야 했습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힘들어 하는 집안 식구들의 부담을 들어주기 위해서 형님이 사는 서울로 와서 취직을 하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 난폭군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그 결심으로 취직을 한 곳이 서울 동대문구 봉제공장이 많기로 소문이난 장안동에 거처를 정하게 되었고 미성산업이라는 봉제 공장에 첫 직장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살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신속하게 배운 봉제 기술이 동료들과 사장님의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반신 마비 증세가 날로 악화됨의 장애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장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억울함과 불행의 연속된 삶이 16년이라는 긴 세월로 이어지게 되었고, 10여 곳이 넘는 직장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옮겨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2년 3월 육신의 장애는 최악 되어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때 믿음사라는 봉제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 하나의 내 안에 장애가 되어 분노로 들끊게 되어 술로 찌든 방탕의 삶을 살게 되었다. 누구든지 맘에 들지 않으면 죽이도록 저주하고 싶었다. 전봇대에 붙은 대출 업체들을 찾아가 맘껏 대출을해 대책없이 돈도 써버렸다.

이렇게 살다가 않되면 인생 끝내면 되지 하는 포기한 인생을 살며 세월을 보냈다. 막가는 인생을 살아가는 나를 남대문에서 막가파로 건드리지 못할 사람으로 소문이 나버렸다. 허랑방탕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중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교회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내가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 어린시절의 순수함으로 되돌려준 가나안교회
입소후 처음 얼마간은 내게 끓는 분노를 삭일만한 뚜렷한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하여 담임목사님의 간증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어느날인가부터 나도 담임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서 무조건 예수님을 믿어 보고 싶었습니다. 마치 우연처럼 주위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누구든지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아작 내고 싶었던 괜한 마음이 생겼는데 주위 사람들이 좋아져 보였습니다. 실장님 이하 사람들이 너무 나를 친절하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을 찾아 다녔는데 직장은 쉽게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13구역 안에서 실장님의 도움을 받아 쉼터 직원들과 성도님들의 옷을 저렴한 가격으로 수선하고 다림질해 주기로 했습니다. 소문이 금방 담임 목사님께 까지 들려지게 되어 담임 목사님이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미국 집회를 가셔서 저를 위해 가벼운 전기다리미를 선물 해 주셨습니다. 저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미국에까지 전해 졌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어제할 수 없는 마음의 감동까지 경험했습니다. 가나안 교회는 순수한 저의 어린 시절로 돌려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이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치며 자랑했습니다. 가나안교회에 들어오면서 내게 좋은 일만이 일어난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때의 감정으로 가나안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좋은 일들을  다시 한번 나열해 보고자 합니다.

기초생활 수급자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2년동안 전동 휠체어를 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도 안되었는데 가나안교회를 입소하면서 쉽게 전동 휠체어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2008년 11월 파산 면책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샬롬의 집(빌라)으로 이주를 하여 안락한 생활을 하며 사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내게 선물의 은혜이지만 내가 하나님과 담임 목사님에게 더 큰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천하 난폭꾼이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원망과 불평의 삶으로 남들에게 피해만 주면서 살았던 삶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수있게 된 것입니다. 교회와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 얻게 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마날 수 있도록 해 주신 김도진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베풀어 주신 은혜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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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혹은 기도원  2009/06/25

교도소에서 편지가 왔다. 3개월전 수감된 XXX씨로부터 이다. 교도소출신인데다가 쉼터에 있는 동안 자잘한 문제도 많이 일으켜서 목사님을 비롯해서 쉼터 직원들이 많이 신경을 썼었다. 하지만 옛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수감되었다. 수감된 후 많이 뉘우친다고 편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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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내용 일부-
저는 현재 벌금 재판 때문에 항소중에 있습니다. 본 징역은 2년 7개월정도 남았습니다.....가나안교회는 어떠한지요. 많이 힘들겠지만 주님께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 김도진목사님 옆에서 잘 보좌해주시고 오래 오래 만수무강 살아가시길 두손모아 기도드린다고 전해주십시요. 많이 바쁘고 쉴 시간도 없는 목사님께 죄송하게 생각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과 생각만을 하면서 이때까지 무관심속에서 생활해서 직원들과 목사님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저도 남들에게 상처와 눈물 씻을 수 없는 죄만을 짓고 살아온 어리석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하고 잘못된 모습들을 수없이 많이 보여드려 제 인생에 아무것도 보여 드릴 것이 없어 마음이 찢어지고 고통스러워 괴롭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의 잘못을 주님께 용서를 진심으로 구하면 깨끗이 씻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6월30일에 이곳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으려고 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죄인이 주님앞에 맹세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많이 흔들리고 많은 유혹과 세상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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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출신들은 보통 교도소를 학교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 목사님은 교도소를 기도원이라 부른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수로 혹은 옛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재수감되는 경우들은 교도소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지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목사님은 교도소를 기도원이라 부르신다. 성경도 보고 기도도하고 세례도 받을 수 있다니 기도원이 아니겠는가? 우리 쉼터 형제님들도 여러명 기도원에 가 계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내 온 편지들을 보면 교회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진지한 회개의 모습을 보게된다. 교회에서 늘 듣던 말씀들이 그제서야 떠오르나보다. 물론 출소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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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경찰서 인데요    2009/06/26

경남 진주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올라온 김윤X씨(36세)가 있다. 주민증이 말소가 되어서 살리기 위해 병원관계자와 함께 잠시 왔었는데 동사무소를 갔다 오는 중에 사라져 버렸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상태여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찾지 못했고 결국 병원차는 돌아갔다. 더운 날씨에 한참을 찾아 해메었는데 발견된 곳은 구청쪽이었다. 그것도 우리 지역 구청도 아니고 다른 지역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결국 거기까지 가서 데리고 왔는데 어제 또 사라졌다. 그리고 저녁때 양평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이곳에 있으니 데리고 가라는 것이다. 데리러 갈 만한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하자 직접 데리고 오겠다고 했고 저녁때 쉼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제 밤 방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확실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분이다. 이런 분을 우리 같은 개방시설에서 데리고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어서 은평병원으로 보냈다.

날씨가 더워지면 확실히 정신질환이 있으신 분들의 상태가 심해진다. 정상적인 사람도 더우면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도 다툼이 벌어지는데 이런 분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무더운 여름이 오고 있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이해하며 지낸다면 올 여름도 문제없이 지나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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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하는 아줌마 좀 바꿔주세요.  2009/07/15

나이 70에 이렇게 술을 자주 먹고 술주정이 심한 사람은 처음봤다. 이 분의 술주정은 전화해서 했던 얘기 또 하고 또하는 식이다. 지난 주 주일 아침일찍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곤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상담하는 아줌마 좀 바꿔주세요~'라고 했다.

-'김성X씨 퇴소되었으니까 더 이상 전화하지 마세요.

'아니~그게 아니고, 상담하는 아줌마 좀 바쭤....'

-'상담이고 뭐고 간에 더 이상 전화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주일은 이래 저래 더 바쁜데 또 전화가 왔다. 그리곤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아무 댓구없이 끊고 또 끊고 또 끊기를 십여차례 본인도 지쳤는지 그제야 전화하기를 멈췄다. 입소한지 얼마후부터 술만 먹으면 전화를 해서 본인이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있으니 퇴소시키지 말아달라느니 하며 거짓말을 했다.  병원이름도 모르고 전화기에 지하철소리가 나고 있는데도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지...알았으니 빨리 들어오시라고 해도 잠시후에 또 전화해서 같은 소리를 했다. 그러기도 한 두번이지 여기가 본인 집도 아니고, 어쩌라는 건지 정말 한심했다. 이제 70이면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도 여전히 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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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좋아도 입원하기 싫어하는 사람들    2009/07/15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건강이 너무 안좋아서 요양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무료로 입원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나 정작 가야하실 분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신다.

올해로 82세이신 유XX할아버지는 요즘 다리가 아파서 밤마다 끙끙 앓는다. 본인보다 방 사람들이 더 걱정을 한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치료 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한사코 거절하신다. 어떻게든 활동을 해야지 된다며 일주일에 3일씩 노인일자리까지 나가고 계신다. 그래도 연세가 있으신데 젊었을때 생각만해서야 되겠는가? 벌써 우리쉼터에 계신지 8년째이신데 처음 입소하셨을때의 모습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세월이 가는 것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 마음이야 뭐든지 하실 수 있을것 같겠지만 벌써 여든을 훌쩍 넘기고나니 어느새 귀도 안들리고 눈도 침침하고  치아도 다 빠져버렸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하나 둘 가고 나니 이젠 방에서도 최고참이 되어 계신다. 본인 말씀대로 살아갈 의지나 희망만 놓으면 언제든 삶이 끝날 수도 있는 처지이시다. 그러기에 더욱 입원을 안하려하신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으시리라...

그런가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입원치료가 필요한분들도 있는데 오늘 요양병원에 좀 갔다오시면 어떻겠냐고 하니 싫다고 거절하신다. 한분은 웬만하면 자기 이름을 사무실에서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며 내려가셨다.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또 한분은 할 일이 많아서 못 간다고 한다. 물론 하는 일은 전혀 없다.

"어제는 비가와서 쉬었지만 할일 이 있어서요...제가 아직 쉴 입장이 아니어서요. 괜찮으니까 딴 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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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주민등록증 도용사건.    2009/07/22

서울시에서 전화가 왔다. 김재X씨가 남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번에 희망근로에 나가면서 고용보험, 국민연금등을 가입하려다보니 이미 가입된 것으로 나타났고 본인확인 결과 실제 김재X씨가 따로 있었다. 간혹 남의 주민번호를 사용하거나 거짓 주민번호를 사용해서 입소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번처럼 남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 사건이 형사처벌까지 될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이 사람을 잡기로 했지만 그날부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늘 진짜 김재X씨가 찾아왔다. 와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전에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을 주워서 사용해 온것 같다. 나이도 비슷하다보니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으리라. 대부분 이런 사람은 쉼터에 입소할 때 신분증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후 잘못된 주민번호를 댄다. 하여간 이번 일로 쉼터들의 입소조건은 까다로워질것이다. 자기 혼자 편하자고 남을 속이는 바람에 결국 쉼터 규칙만 더 까다로워지게 된 것이다. 앞으로 각 쉼터들은 신분이 분명치 않은 경우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몇 몇 사람들때문에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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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욕심  2009/07/23

80이 넘은 나이에도 일에 대한 욕심이 많으신 분들이 있다. 이제는 좀 쉬고 싶을텐데도 말이다. 어제는 한 분이 편지를 써서 읽어보라며 주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편지 안에 돈 3만원이 들어가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들과 식사라도 하라면서 일자리 청탁을 한 것이다. 이 분은 현재 연세가 많아 노인일자리에 다니고 계신다. 일주일에 3일정도 일하시고 20만원정도를 받는다. 그런데 일당 2만원짜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쉼터에서 한달에 20만원이면 노인분들에겐 전혀 모자라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에 욕심을 가지는 걸 보면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존재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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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기 캠프    2009/07/28

2009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기 캠프가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1박 2일로 가평수련원에서 있었다. 몸이 안좋거나 직장문제로 빠지신분들을 제외하고 총212명이 참가한 가운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숙소까지의 이동은 2대의 관광버스와 기차 그리고 교회 차량을 이용했다.

첫째날은 청백으로 나뉘어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치렀는데 얼마나 열심히들 참여했는지 보는 사람들이 한시라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줄다리기,박터트리기,릴레이경주,2인1조 업고 달리기와 발목 묶고 달리기,5바퀴돌고 떡먹기등 흔히 운동회때 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좁은 청량리 한복판에서만 살다가 모처럼 넓은 운동장에서 게임을 해서 그런지 기분이 색달랐다. 경기 결과는 초반부터 꾸준히 선전한 백팀이 차지했고 백팀에게는 우승기가 수여되었다.

체육대회가 끝난후 각자 자유시간을 가졌고 개울에서 수영도 하고 발도 담그는 등 휴식을 취했다. 저녁식사를 한후에는 저녁집회를 가졌고 각호실마다 자유롭게 취침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밤11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새벽까지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왔는데 아침이 되자 비도 그치고 날씨도 개어서 활동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25일에는 아침식사 후 9시부터 11시까지  OX게임과 성경퀴즈를  했는데 마지막 결승전에 올라간 4개구역 총 8명은 상당한 실력을 발휘하여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상치 못하게 하였다. 결국 마지막 문제로 동점을 이룬 5구역과 15구역이 한 문제로 결정을 하게 되었고 5구역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번 우승한 구역에게는 구역전체가 회식을 할 수 있는 회식비를 제공해 준다.

짧은 수련회기간이었지만 사고없이 좋은 날씨가운데서 마칠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며 봉사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좋은 장소를 대여해주신 가평수련원측에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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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아름다운 공동체 만들기 캠프 동영상    2009/07/29

2009.0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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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이희남) “희망의 인문학”이 준 소원의 성취    2009/08/05

간증-이희남  “희망의 인문학”이 준 소원의 성취 
꿈도 없이, 목표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먹고 마시고 잠자고. 그렇게 덧없이 살아온 사십 여 년의 시간 속에서 나의 삶은 무의미함 그 자체였습니다. 술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지 빠지는 법이 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잠을 자다가도 술 이야기 하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형제간의 우애 같은 것은 아예 생각에도 없었고 결혼을 해서 친구들처럼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이라도 해 본 경험이 저의 기억으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직 나 자신의 향락과 쾌락만을 쫓아 40여년을 살아왔습니다.

다만 제 안에는 끓어오르는 분노만으로 계속 채워져 왔습니다. 분노의 대상은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부모, 형제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난으로 된 것이지만 배우지 못한 것이 수치심으로 발전이 되어 술 마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도 마시고 지치지 않는 세월을 술과 함께 보냈습니다. 2008년 그러니까 지난겨울, 그나마 겨우겨우 나를 연명하게 했던 직장마저 그만 두게 되면서 알코올과의 동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죽음, 그까지 것 지금 죽는다고 뭐 그리 서럽겠는가? 지긋지긋한 삶  이쯤에서 접는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술에 의지한 저의 삶은 사람들이 패인이 됐다 하리만큼 스스로 황폐해져 버렸습니다. 이제 회복할 수 없는 절망적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자괴감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시고 취해서 괴로운 내 인생의 만사를 잊어버리자 모든 걸 잊고 쓰러지자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서 쓰러져 잠이 들고 깨어나 또 마시고, 다시 쓰러져 잠들고 양말도 신지 않은 발에 슬리퍼를 끌며 한 겨울 추위도 잊은 채 거리에 뒹굴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술에 찌들어서 보이는 거리는 희미하고 가물가물 거리며 사물이 내 눈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 빛,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캐롤송 등등,,, 이런 가운데서 나는 이렇게 죽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모질고 허망했던 나의 삶이 이렇게 해서 끝나는구나 하면서 며칠을 헤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나뒹굴던 어느 날 죽음 속에서 무의식중에 생명의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손을 저어며 살려 달라고 신음의 소리로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려주세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후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국립의료원 중환자실이었습니다.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거기서 열흘 정도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회복 되었습니다. 병원 측의 권유로 퇴원을 해야만 했지만 갈 곳이 없는 나는 다시 눈앞이 캄캄해져 왔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했었기에 그나마 살던 월세 방도 비우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없애버린 터라 돈이라곤 땡전고리 한 푼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퇴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고 갈 곳이 없어 고민에 빠져 있는 나를 본 같은 병실에 있던 한 분이 안타까운 듯 구청사회과를 찾아가 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몸을 추슬러 안간힘을 다했지만 몸은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물어서 동대문구청 사회복지과를 찾아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청량리에 있는 가나안쉼터를 소개 받고 입소를 했습니다. 쉼터는 밥만 주고 잠만 재워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교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그 따뜻한 느낌, 그리고 친절하게 맞아 앉힌 후 건네는 상담원의 포근한 말 한마디 ‘잘 오셨습니다. 이제 걱정 하지 마세요.’ 라는 소리에 내 가슴속을 수 십 년간 짓누르고 있던 분노와 열등감과 수치심의 응어리가 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여자 상담직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지난날이 부끄러웠습니다. 이유를 알 수도 없이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마음의 평정을 찾으면서  의외로 빨리 쉼터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입소한 쉼터는 따뜻한 보금자리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의 실장님과 형제들 모두가 나의 건강을 걱정하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간호사님이 지극 정성으로 해 주신 간호를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의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정기적인 치료로 노숙으로 인한 몸의 상처도 깨끗하게 아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담임 목사님의 새벽예배 설교말씀과 인생 역경에 승리의 간증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은혜’ 라는 것이 인간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쉼터의 생활은 매일을 규칙적인 생활로 육신을 치료하고 설교 말씀을 통하여 병든 내 마음을 고쳐 나갔습니다. 나의 몸과 마음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게 회복 되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로 소망을 가지고 있던 중에 저에게 또 다른 기쁜 소식 하나가 전해져 왔습니다. 뜻밖의 소식은 나의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내게 맺혀 있던 한을 풀 수가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시에서 하는 “희망의 인문학”이었습니다. 공부를 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시립대에서 오세훈 시장님을 모신 가운데 입학식을 할 때 들뜬 마음으로 감격했던 그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업을 듣다보니 유익한 점도 많고 어릴 적 학창시절 생각도 나고 해서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내가 평소에 공부하고 싶었던 ‘문학, 철학, 역사’를 배우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일주일에 두 번 듣는 강의지만 저에겐 너무나 귀중한 시간이기에 더욱 가슴이
벅차오를 뿐입니다.

수업시간엔 그저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영영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교수님들과의 속 시원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며 소화불량처럼 답답했던 마음이 뻥하고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짧은 기간임에도 나의 마음의 양식이 차곡차곡 쌓여 감을 느끼게 될 때는 지난 세월 자과감에 시달리던 어리석음에서 자존감을 되찾는 엄청나게 변화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이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렇게라도 꿈을 갖게 된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삶의 전환점이 되었기에 더욱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의 인문학’으로 인해 제게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오세훈 서울 시장님과 시청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리고 오늘도 영적으로 강건함을 주신 가나안교회 김도진 목사님과 늘 격려와 사랑을 더하여 주시는 부목사님들 가나안 쉼터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쉼터 형제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이모든 일에 저에게 힘과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드립니다.
                         
2009. 8. 3  이 희 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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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들    2009/08/05

낮12시가 다 되어 전화가 한통 왔다. 전화 건 사람은 다짜고짜 주소를 불러댔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화가난 상태였다.

'서울 송파구 XX동 XX인데 김충X씨가 이사갔는데도 편지가 계속 옵니다.'

아마 매월 보내는 소식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소식지 주소록을 살펴보니 명단에 있었다. 일단 죄송하다고 하고 삭제를 해서 더 이상 안가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이 분은 지나칠 정도로 말씀을 함부로 하셨다.

'전화 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죠?'

-'김XX입니다.'

"제가 지금 시간을 보니 11시 48분인데 지금 시각이후로 또 편지가 오면 그때는 김XX씨가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스물한통째 편지를 받고 있는데 왜 이사간 사람 앞으로 계속 편지를 보냅니까?"

-"반송함에 넣어 두시면 반송되어 오거든요. 그러면 저희가 삭제를 하는데요."

"아, 다른 말은 듣고 싶지 않고요 다시는 편지가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정말 황당하다.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려해도 화가나서 들을 필요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소식지를 받던 김충X씨는 우리 동역자로 이곳을 돕는 분이었고 그렇기에 당연히 매월 소식지를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마 2년전에 이사를 하신 모양이다. 주소가 옮겨졌다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지 않는이상 우리가 그 사실을 알리가 없고 당연히 소식지는 계속 발송되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오신 분이 남의 소식지를 받게 되면서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본인 편지가 아니면 반송함에 편지를 넣어두던지 아니면 이쪽에 한번 전화를 해서 이사갔다고 해주면 될 것을 한달 두달 참고 참다가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화를 낸 것이다.

우리 쉼터에는 매월 반송되어 오는 소식지가 있다. 이사를 가거나 반송함에 투입된 편지들이다. 그럴때마다 명단에서 즉시 삭제하여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간혹 오늘처럼 본인들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말하는 분들이 있다. 한번이라도 반송을 해주었던지 아니면 전화라도 해서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도 보냈다면 이해하겠지만 21개월동안 아무 소리 없이 소식지를 계속 받다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이사갔는데 왜 보내냐고 하면 어쩌란 말인가? 우리가 무슨 국가 정보기관이라도 되어서 이사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의로 기분나쁘라고 보내드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얘기를 전혀 듣지 않고 본인 말만 하는 건 또 무엇인가? 우리 역시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편지를 한달이면 수십통씩 받고 있고 일일이 분류하는 수고를 하고 있기에 우리쪽에 삭제를 요청하는 주소들은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런걸 용납하지 못하는 분들이 왕왕있다. 무더운 여름 서로 조금씩 이해하며 말한마디라도 좋게 한다면 좀 더 시원한 여름을 지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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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 잠깐 놀러갔어요  2009/08/11

지난주 원주에서 올라온 한 청년이 있었다. 괜히 실실 웃으며 행동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이제 나이 23살인데 오자마자 자기 집처럼 활개를 치며 돌아다녔고 이 일 저 일 간섭하다가 결국 혼나고서는 쉼터를 나갔다. 그러더니 오늘 다시 나타난 것이다. 비도 오는데 비를 쫄딱맞고는 사무실 문을 슬며시 열었다. 지난번에 말도 없이 퇴소한 것 때문일 것이다.

사무실에서 들어오라는 소리에 용기를 얻었는지 들어왔다.
-그 동안 어디 있어어?

'영등포에 잠깐 놀러갔어요.'

-영등포에서 노숙했어?

'네'

그런데 이 청년은 양동이처럼 생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뭐지?

"장난감이요. 먹을 건줄 알았죠?"

안을 들여다보니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로보트들이었다. 확실히 정신수준이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앞으로는 나가지 말고 잘 생활하라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속에서 잘 적응 할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장난감이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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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멤번데...  2009/08/17

강영X씨가 들어오자 마자 바지를 달라고 한다.  맡겨 놓은 것을 찾으러 온 사람처럼 반바지를 달라고 한다. 입소해 있지는 않지만 알고 있는 사이 (좀 안좋은 일로)라 며칠전 반바지를 주었었다. 그런데 며칠만에 또 와서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반바지를 또 달라고 한다. 안된다고 하니까 옷이 있는 곳에 가서는 츄리닝반바지를 막무가내로 가져간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초창기 멤번데...'라고 한다. 옷을 받아서 어디에다 팔아먹는지 며칠전 준 옷도 입고 있지 않다.

초창기 멤버라고 해서 입소기록을 보니 2003년도에 5일정도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퇴소사유도 음주와 규칙위반으로 인한 강제퇴소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5일이면 짧지는 않은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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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이 뚜렷해서 기억에 나거든요.  2009/08/19

한 분이 게시판에 붙여놓은 미아찾기 캠페인 전단지를 보고 들어왔다. 전단지엔 27명의 미아들 사진이 나와있고 잃어버릴 당시의 나이와 날짜가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분이 그 아이들 중 한 명을 보았다고 한다. 올3월정도에 수원역근처에서 한 남자가 데리고 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는 것이다.

"아저씨, 저 아이를 봤어요?"

-"네...3월쯤 수원역근처에서 어떤 남자가 데리고 가는 것을 봤거든요"

"그때 일이 기억나요?"

-"인상이 너무 특이해서 기억이 나거든요."

말하는 투를 보니 착각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간혹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이 실종된 사람들을 봤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경찰들은 그 사람의 말에 의존해서 또다시 수고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이 분에게 경찰이 오면 수원역 근처에서 발견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한후 절대로 경찰서에 연락하거나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 분이 봤다는 아이를 살펴보니, 윤XX 어린이인데 99년도에 실종된 아이였다. 당시 9살이었으니 지금은 19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것도 모르고 단지 사진속의 아이모습을 봤다고 확신하고 있으니 어찌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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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데서도 안받아줘요...    2009/08/20

이XX씨가 음주와 무단외박으로 퇴소된 후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다. 쉼터에서 나가더라도 퇴소기록이 남아있기에 다른쉼터에 가더라도 그 기록이 따라다닌다. 이XX씨의 기록은 4~5의 무단외박으로 인한 퇴소였다. 말 그대로 들어올때는 상담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입소했지만 나갈때는 아무 얘기 없이 그냥 안들어오는 경우를 말한다. 무단으로 안들어오는 이유야 많지만 음주문제가 가장 많다. 그러다보니 다른쉼터에서도 안받으려한다.

이XX씨는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다.
"무단퇴소가 많아서 받아주지를 않아요... 사회봉사도 열흘동안해야하는데 한 번만 봐주세요..."

-"사정이야 알지만 그러게 나가실때 잘하고 나가셔야죠. 그쪽에 잘 부탁해 보세요."

노숙인쉼터이지만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절차가 있고 규칙이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용이 있다. 이런 걸 무시하고 살아가면 어디에도 있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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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2009/08/27

신종플루가 갈수록 극성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던 것이 1만명,2만명의 사망자를 낳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뜨면서 예상보다 파장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그와 맞물려 서울시에서도 노숙인쉼터들에 대해 대책을 서두르고 있어서 어제 오늘 쉼터에서 느끼는 것은 더욱 크다. 서울시에서는 예방수칙과 대응책을 각 시설마다 내려보내어 비치해 놓도록 하고 있고 열이 나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검진을 받도록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매일 같이 건간상태를 체크해서 보고를 하도록 하고 있어서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 느낌이다. 오늘 시에서는 각 시설마다 의무적으로 손소독제와 마스크등을 구비해 놓도록 했는데 인터넷에서는 벌써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가격도 하루 이틀사이에 몇배로 상승하고 있다. 이런식이라면 며칠후면 아예 구입하기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예방하고 조심하는 거야 당연히 해야할 일이겠지만 너무 지나치면 사회적인 불안감을 조장할 뿐일 것이다. 우리 같은 쉼터는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기에 감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어서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보호하시고 이 혼란한 시기가 빨리지나가기를 기도드릴뿐이다.